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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다큐

토리노의 말 (2015년 2월 8일)



토리노의 말 (A TORINOI LO, The Turin Horse, 2011)

드라마: 헝가리, 프랑스, 독일, 스위스, 미국, 146분, 2012.02.23 개봉,

감독: 벨라 타르

출연: 에리카 보크(딸), 야노스 데르즈시(마부)


이 영화를 봤을 때, University of Colorado-Boulder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이다. 다이빙을 가는 길에, 이메일을 확인했고, 아침에 합격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펄쩍 뛸듯 기뻤고, 그리고 횡단보도에서 그냥 엉엉 소리내서 울어버렸다. 맘 졸이면서, 기다렸고, 이제는 다행이다, 너무나 듣고 싶었고, 기다렸던 소식이다, 이젠 걱정을 덜겠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기쁜 것도 잠시, 점점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공부하러 간다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교환학생으로 캐나다에 살아봤고, 그래서 외국에 대한 환상도 없다. 오히려 낯선 곳에서 잔뜩 긴장하면서 살아야하는 피곤함이 먼저 몰려왔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분절된 언어로 더듬더듬 공부를 한다는 두려움이 몰려와, 폐허에 남겨질 생각을 하니 숨부터 막혀왔다. 누가 내몰지도 않았는데, 강제로 떠밀리는 생각도 들었다. 낯선 곳에서 살 자신은 있지만, 공부할 자신은 없으며, 더더욱 외국어로 이방인으로 살아갈 생각을 하니, 두렵고 두려웠다. 그리고 영화 <토리노의 말>을 봤다.

영화를 보는 내내, 시계를 들여다보고, 가지 않은 시간을 느끼며, 폐허가 된 곳에서 지루하고 지루한 여정을 함께 견뎌해야 하는 것이 영화 관객의 몫인 것만 같아서, 지루하지만, 그냥 이리저리 뒤척이며 시간을 견디었다. 그리고 너무나 자명하게도, 내가 앞으로 공부할 곳이, 저 창밖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며, 견딜 시간들이라는 생각에 공포감도 밀려왔다. 미리 겪지도 않은 일에 대한 좌절감도 맛보았다. 물론 엄살일 수도 있겠으나, 엄살만은 아니다. 유토피아가 '없는 곳'이라면 디스토피아는 이미 내가 살고 있는 곳이다. 한국에 남아도 여긴 디스토피아이다. 유학을 간다 해도 디스토피아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에서 계속 살아간다면, 내가 가보지 못한 미국에서 대학원 생활을 그리워하면서, 아쉬워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사실, 엄살이긴 하지만, 한국에서 사는 것을 미화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 있으면,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 위안받고 싶은 사람들을 맘을 먹으면 만날 수 있겠지만, 그 어렵게 어렵게 형성한 친밀한 관계들, 나의 시간들을 함께한 사람들을 뒤로한 채 떠나야 한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누군가 그랬다. 크리스마스에 한국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집안에 있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지만, 아쉬울 것이 없지만, 외국에서 산다는 건, 크리스마스에 방구석에 처박혀 있으면 몰려올 그 외로움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또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 그것도 분절된 언어로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으며, 피로감, 외로움, 고독감이 몰려오는데, 그것도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사실, <토리노의 말>이 지루한 영화이며, 지루하다는 것이 결코 재미없다는 뜻은 아니다. 지루함을 함께 감독과 배우와 관객과 견뎌보는 것. 그것이 디스토피아일 것이고, 그 디스토피아가 결코 다른 어떤 곳이 아니라, 바로 여기라는 점을 좀 직면해보는 것. 그냥 나에게 이 영화는 그랬다. 

근데, 멍청하게도,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 이런 내용을 징징거렸다. 그런데, 앞으로 그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해하지 못할 사람에게 나를 이해해달라고, 내 상황이 이렇다고 말할 필요가 없단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그러면 난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어차피 사람들은 내 상황에 대해 이해하지도 못할텐데, 그러다가도 어차피 이해하지 못할 사람에게 말하지 말자, 자랑하는 것으로 들리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