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오늘의 식탁은 안녕하신가요?
여러분 앞에 직접 기른 작은 늙은 호박 100개가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잠깐 시간 드릴게요. 이것으로 무엇을 해보고 싶나요? 여러분의 머릿속에 어떤 그림이 그려지나요? 딱히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구요? 그렇다면, 이 늙은 호박으로 스마일~ 사람의 웃는 모습을 푸르른 잔디밭에 배치해보는 건 어떨까요?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나요? 조금은 유쾌한 상상이지요. 상상력과 창의력을 담아 자신들이 직접 심고 재배한 농작물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오랜만에 배곳 친구들에게 인사드립니다. 저는 먹거리, 젠더, 계급에 대해 관심 갖고,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교 (University of Massachusetts Amherst)에서 사회학 박사과정 2년차를 끝냈습니다. 모국어가 없는 곳에서 조각난 언어로 더듬더듬 제 생각들을 채워나가는 공백들이 듬성듬성 채우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기 미국 동부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이곳 주변에 총 5개 학교들이 있는 작은 대학 도시입니다. 이 학교에는 백인 학생들이 78%로 절대적으로 대다수를 차지하니, 사실 인종적으로 그렇게 다양하게 구성된 곳은 아닙니다.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갈 때마다 드넓은 옥수수 농장을 지나치는 농촌지역이고, 밤에는 하늘의 별이 쏟아지는 곳입니다. 여름방학인 이곳에서 저는 자전거로 10분 거리에 있는 농장에 가서 여기 대학생들과 오전에는 잡초를 뽑고, 오후에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그야말로 주경야독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1년 동안 참여 관찰한 학생 농업 기획 프로그램 (the Student Farming Enterprise Program)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칼리지 밸류 온라인(College Values Online) 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2015년 미국에서 지속 가능한 농업을 운영하는 대학교 중 5위로 자리매김하였고, 유기농 채소, 학생들의 참여, 지역사회 배분이라는 특징 덕분에 높은 순위를 받았습니다. 2007년 가을에 2명의 학생들이 약 300평 밭에 케일과 브로콜리를 재배하면서 프로젝트는 시작되었습니다. 2008년 봄, 이 프로젝트는 1년 동안 2학기 수업 구성으로 발전되었고 한 해 평균 12~15명 학생들이 수업을 듣습니다. 당근, 가지, 상추, 양파, 감자, 고구마, 토마토, 옥수수, 콩, 호박, 마늘, 브로콜리 등 우리에게 친숙한 농장물들부터 방울양배추, 스위스 챠드 (일종의 근대), 콜라비, 버터넛 스쿼시, 비트 등 조금은 낯선 농작물을 포함하여 40여 가지의 농작물을 약 17,000평에 재배합니다.
1년 동안 수업은 이렇게 진행됩니다. 학생들은1-4월에는 1년 농사를 어떻게 꾸릴지 계획하고, 유기농 씨앗은 얼마나 구매할 것인지, 밭의 토양 상태를 측정해 비료는 얼마나 필요한지, 농작물의 병충해는 어떻게 대처할지 등에 대해 배웁니다. 학교 근처에 유기농업을 하는 농민을 찾아가 견학을 하기도 하구요. 밭 한 가운데 세상에서 제일 튼튼한 규모가 제법 있는 비닐하우스를 같이 짓기도 합니다. 씨앗 모판에 파종을 하고, 옮겨심기를 합니다. 5-8월, 여름방학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도 있지만, 절반 가량은 이곳에 남아서 계속 농사일을 합니다. 평일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잡초를 뽑고, 호미질하고, 거름을 주고, 자세히 기록을 합니다. 9-11월에는 약 10주 동안 햇볕으로 익은 농작물을 파는 학생농민장터가 열리고, 공동체 지원농업 방식인 제철 채소 꾸러미를 신청한 사람에게 나누어줍니다. 12월에는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내년을 계획하는 시기입니다.
어제는 허리를 굽혀 땅을 디뎌가며 잡초를 뽑고, 이 땅의 힘으로 무럭무럭 자라게 될 대파와 당근, 콩 줄기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전 한국에서 농촌 활동을 갔었을 때가 생각이 났었습니다. 율무밭에 자란 잡초를 뽑았는데, 제초제 5000원에 사서 뿌리면 해결될 일임에도 불구하고, 뙤약볕 아래 6명이 밭에 앉아 한 손에는 호미를 쥐어 들고, 엉금엉금 기어 율무를 찾아내고 나머지 잡초들을 뽑아 내었습니다. 그 짧지만 강력하고 조금은 고된 노동을 하면서 제 머릿속에는 계속 5000원이 맴돌았습니다. 머릿속에서는 덧셈과 뺄셈이 오고 가면서, 시장에서 유기농 율무가 제대로 값을 받지도 못할 텐데 인력을 고용하느라 들어갈 오히려 그 수고비가 머릿속에 왔다 갔다 했습니다. 유기농을 정말 소농민에게는 밑지는 장사일 것인데, 그 값싼 제초제의 유혹을 이겨내고 유기농을 고수하려는 농민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초록이 우거진 곳에서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뙤약볕 아래 잡초를 뽑으면서 많은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자고 나란 제가 이런 농촌 생활을 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많은 음식들을 먹었지만, 그 음식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자라서, 어떠한 요리 노동을 거쳐서 제 밥상 앞에 차려지는지 정말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무지함에 대해 반성했습니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려 정리정돈 된 밭을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점심시간에는 각자 도시락을 먹습니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토니, 사과에 땅콩버터를 발라먹는 사라, 파스타를 잔뜩 싸와서 먹는 윌, 양 손 한 가득 샌드위치를 잡고 먹는 선생님 제이슨, 볶음밥을 싸와서 먹는 저, 이렇게 식성도 각각 다양합니다. 잠시 더위를 식힐 겸 밭 맞은 편에 있는 코네티컷 강가에 그냥 편히 겉옷을 벗고 속옷차림으로 수영을 했습니다. 밭에서 꽃피는 수다 덕분에 서로에 대해서 알게 되는 과정들도 덤으로 얻었고요. 사실, 유학생들은 수업 듣고 논문 쓰느라고 자신이 살아내고 있는 공간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부족합니다. 저는 참여 관찰이라는 것을 핑계 삼아 농장에도 가고, 매주 학생들과 만나고, 수업도 참관하고, 인터뷰도 하고, 농민장터에서 같이 농산물도 팔고, 그러면서 이러한 과정에서 제가 이 공동체의 작지만 일부분이라는 소속감을 나름 느끼며 지내고 있습니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는 가을, 이곳에서 추수할 벼는 없지만, 풍성하게 자라난 가을들판에서 수확 시작합니다. 이렇게 학생들의 땀과 자연이 내어준 농작물들은 학교 식당, 학내 협동조합 까페, 식료품 체인점 Big Y로 갑니다. 식당들은 어떠한 채소를 주문하지 않습니다. 유기농 식재료로 요리한다는 자부심을 기반으로 학생농민들이 제공하는 채소는 받아서, 오히려 이것으로 무엇을 만들지 요리 방법을 고민합니다. 또 식료품 체인점에 가보면, 유기농 채소 코너에 이곳 학생들이 직접 키운 유기농 로컬 푸드라고 적혀있습니다. 일종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결되어 있는 “얼굴 있는 먹거리”를 내세운 셈입니다.
동시에 9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약 10주 동안 매주 금요일마다 교내에서 학생들의 농민장터(the Students Farmers’ Market)가 열리고, 공동체 지원농업(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회원들에게 농작물을 공급합니다. 학생들은 350$ (약 40만원), 교직원들은 380$ (약 44만원)을 내면 매주 11 kg의 제철 채소를 10주 동안 받을 수 있고, 저도 받아보았습니다. 여기서 ‘제철’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흔히 마트에 가면 가지가 계절과 절기를 잊고 1년 내내 진열대에 올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1년 내내 가지를 먹을 수 있을까요? 노지에서 재배된 가지는 서리가 내리면 더이상 먹을 수가 없습니다. 한 학생이 “이번 주에는 가지가 없나요?”라고 묻자, 농민학생이 “서리가 와서 더이상 가지는 없어요.”라고 대답합니다. 이러한 대화 속에서 제철채소라는 개념이 자리잡고, 가지를 1년 내내 먹지 못한다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가지를 길러내는 땅 또한 지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일정 정도는 쉬어야 하고, 서리가 내리면 다른 작물을 먹어야 한다는 연결됩니다. 즉, 땅이 내어준 그 잠깐 동안의 제철 채소에 대해서 감사히 먹을 수 있다는 점 말입니다. 농민장터는 단순히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1년 내내 채소를 먹을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뒤집어서 말하면 1년 동안 그 채소를 먹기 위해서 얼마나 인위적인 것들이 가해졌으며,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고, 화학비료를 사용하고, 이로 인해 발생된 환경오염이라는 장막을 들추어냅니다. 그리고 일정 부분 겸허히 가지를 겨울에는 먹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죠. “쌀 한 톨에 온 우주가 담겨 있다”라는 말이 있다면, 저는 “가지 하나에도 계절의 변화가 담겨 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농업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금이 필요합니다. 대학생들이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은 바로 앞에서도 말한 ‘공동체 지원농업’입니다. 공동체 지원농업이란 소비자가 농민을 믿고 일정액을 지원하면, 농민들은 안정적으로 농사를 짓고 소비자에게 농산물로 돌려주는 방식입니다. 이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 금액을 미리 내고, 농민학생들은 이 돈으로 1년 농사를 꾸려나가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꾸러미 방식으로 많이들 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배춧값이 폭락하거나 폭등하더라도 소비자는 안정적인 가격으로 배추를 공급받고, 생산자는 시장가격에 휘둘리지 않고 배추 가격을 받으니, 시장 의존적이 아닌,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한 독립적이고 지속 가능한 생계수단이 마련됩니다. 이는 바로 ‘먹거리 시민 (food citizens)’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해줍니다. 먹거리 시민은 건강한 음식, 인간, 소비자와 생산자와의 사회문화적 관계 형성, 환경, 동물복지까지 먹거리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권리와 의무를 인지하고, 지속 가능한 먹거리를 위해 행동하는 실천적인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들이 오늘도 먹고 있는 음식이 저 멀리에서 운송되느라고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해서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닌지, 너무 싼 가격 때문에 땀 흘린 농민들에게 제대로 보상이 가지 않은 것은 아닌지, 혹은 ‘유기농’이라는 상표를 붙이고 제3세계의 숲을 파괴해서 얻어진 것은 아닌지, 죽기 위해 태어나는 너무나 슬프고 모순된 운명에 처한 동물들은 아닌지, 식당 노동자들의 정당한 노동에 대한 대가가 담긴 음식인지, 그 음식으로 인해 미래세대에게 조금 더 나은 지구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그리고 나에게도 해악을 끼치는 것이 아닌 몸과 마음을 건강히 해 줄 음식인지 생각해봐야 하겠지요. 이렇게 내가 먹는 밥 한 톨에도 온 우주가 담겨있고,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으며, 이렇게 서로서로 영향을 끼치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분명 생산과 소비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양 손에 쥔 사람들입니다. 그 손에 놓인 가치가 무거워 내팽겨치기보다는 이를 꼭 붙잡고, 젓가락과 숟가락을 들어야 하겠지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말입니다. 이제 당신의 음식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나요?
대학교라는 공간에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하고 이를 실험해보고,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주체라고 학습해보는 경험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이 학교가 실험적인 공간이자 학습과 실천의 장이라는 것이 부러웠습니다. 한국의 경우는 젊은 세대들은 상상은 커녕, 통장 잔고를 매번 확인해야 하는 고달픈 현실에서 학자금 대출과 월세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고작 최저임금 수준의 돈을 받고 일만 해야 하는 서글픈 현실로 내몰려 있습니다. 이런 숨 트일 공간조차 없는 곳에서 농사라는 것이 낭만적이거나 혹은 이상적으로만 들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곳에서도 먹거리에 대한 고민과 관심 갖고 사회 다양한 곳곳에서 새로운 실험들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많이 있구요. 이처럼 한국의 실천과 미국의 실험이 서로 만나서 더 새로운 변화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종이에게 미안하지 않으려 의미 있는 글을 쓰고 싶은 우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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